사토루군
주술회전/고죠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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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의 쉬는 시간은 시시한 잡담으로 꽉 찼다. 몇년 전- 초등학생 시절 괴담들이 다시 입에 오르내리며 지들만의 '그땐 그랬지' 공감대를 형성했다. 분신사바부터, 밤 12시에 입에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 배우자가 보인다느니 하는 미신따위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애기라면 한번쯤 해봤을 법한 강령술들, 더해 '니가 지어낸 거 아냐?'싶은 기상천외한 얘기들이 재잘재잘 여러 입에서 튀어나왔다. 때 마침 괴담을 테마로 한 잔인한 만화가 엄청 유행이라, 따라하는 학생들도 자연스레 생겼다. 다들 중2병이 올 시기였다. 실제로 봤다느니, 어쨌다느니. 됐다느니, 뭐라느니. 더해 나는 영감이 있다며 무당을 자처하는 애도 나타났다.

스구루의 반도 마찬가지로, 반 애들 모두 '나 어제 이거 해 봤어.', '나 어제 저거 해 봤어.' 떠들어댔다. 옆 자리 사이톤지 사토인지가 「나 진짜 봤어!」라며 개뻥구라를 치는게 영 꼴값잖다. 그래도 스구루는 사회성 만렙이었다.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 아, 그래, 정말? 무섭네. 



다들 시시한 거짓말들로 들뜨는 게 우스웠다. 동갑임에도 그 자신 빼고 전부 미취학 아동으로 보인다. 아니면 스스로가 어른같이 느껴지는 건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성공담에 스구루는 헛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세상에 귀신 따위가 어딨다고.

그 날 나온 괴담은 「 사토루군 괴담 」이었다. 공중 전화에 10엔을 넣고 자기 전화번호로 걸고, "사토루 군, 사토루 군, 이리 오세요." 라고 세 번 말하면 일주일 뒤 사토루 군에게 전화가 걸려온다고. 

메리 씨 괴담이랑 뭐가 달라? 스구루는 내심 또 비웃었다. 정말 사토루 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면서 공중전화 내역을 보여주고 다니는 토루인지 사루인지가 거슬린다. 니가 건 거겠지, 라는 말 대신 스구루는 적당히 반응해줬다. 와- 무서워라-, 조심해.



시시하고 유치했다.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중전화가 왠지 집에 가는 길에 떡하니 놓여 있었다. 요새 누가 이런 걸 쓴다고, 하나 둘 사라져가는 옛 기념품이 길가에서 존재감을 어필했다. 왜 그 간은 눈치채지 못했을까. 



마침 주머니에 10엔이 있었다.



뭔가 홀린 것처럼 스구루는 공중 전화 부스에 들어갔다. 10엔을 넣고 나서야 수화기에선 전자음이 들렸다. 전화 번호를 한 자씩 누를 때마다 뭘 하는 거냐는 자괴감이 샘솟는다. 



바보인가, 나는...



신호음이 들린다. 스구루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내 핸드폰으로 걸었으니 전화가 와야 하는데 액정이 잠잠하다. 그럼 이 신호음은 어디랑 연결되고 있는 거야? 예상치 못한 일에 뇌가 스톱했다. 그리고 그 때 신호음이 끊겼다.



"사.... 사토루?"



수화기 너머로 숨소리가 들린다. 스구루는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러니까- 괴담의 다음 내용이 뭐더라. 뭐라고 말해야 하더라? 뭔가 질문을 하라고 했던 것 같다. 당황과 혼란으로 가득 찬 머리는 여러 정보를 뒤죽박죽 섞어댔다. 



"..."

"...사토루...야?"

"...맞아."



질문? 질문.



뭘 물어봐야 하지?



괴담에게 묻는 질문이라 하면 타로카드를 볼 때랑 비슷하지만, 스구루는 남에게 미래를 점쳐달라는 건 딱 질색이었다. 더욱이 사회성 만렙의 그에게 질문이라 하면,



"...사토루는, 몇 살이야?"



이 따위 인적사항이 다였다.





*





다음 날도 여전히 반 애들은 괴담 삼매경이었다. 누군지 뭔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녀석이 또 사토루 군에게 전화가 왔다며, 자기 집 멘션 뒤까지 왔다고 꺅꺅 소리질렀다. 스구루는 굳이 옆에 가서 '나도 어제 해 봤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저 애가 거짓말을 하는건 확실했다. 스구루가 통화한 「사토루 군」은 27살의 느긋한 남자였다. 누구 집에 따라가는 변태 귀신이 아니라.



사토루 군...경칭 생략, 사토루가 귀신인 건 명백하다. 통화가 되는 것도 그렇지만, 단 번에 스구루의 이름을 맞췄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 때 10엔이 운명을 다했다. 꺼져버린 수화기를 붙들고 스구루는 신비한 경험에 고양감을 살짝 느꼈다. 

귀신이 어딨냐? 바보들아- 는 곧이어 진짜 본 것도 아니면서 허세는, 으로 바뀌었다. 어쨌거나 위쪽의 시선에서, 스구루는 남들을 내려다봤다. 



주머니는 10엔이 두 개 들어있다. 스구루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 둔 만큼 바빴으니 많은 시간을 쓰긴 아까웠다. 신기하긴 해도 아직 20엔만큼의 흥미였다. 귀신이 있다 한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키울 것도 아닌데.



이번에 사토루는 전화를 한 콜만에 받았다.



"...스구루?"

"사토루, 안녕."

"...안녕."



계기판에 적힌 20은 점점 줄어든다. 



"나인 건 어떻게 알았어?"

"어제 전화했잖아."

"그렇구나."

"...스구루. 스구루는 몇 살이야?"



스구루는 문득 웃었다. 이름은 알면서 나이는 모르다니.



"사토루도 질문을 하는구나."

"하지."

"그래ㅡ... 사토루, 사토루는 죽었어?"



쭉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은 귀신으로 가득 차야 하지 않는가. 그 보단 사람의 한이 모였다는게 더 신빙성있었다. 그런데, 그런 원념체에 나이가 있는게 말이 되냐고. 



"에? 살아있는데."

"...응?"



뚜-뚜-뚜-



그 순간 20엔은 운명을 다했다. 스구루는 멍하니, 내일은 백 엔을 가져오자고 생각했다.





*





아마, 추측이지만, 살아있다는 말은 육체적인 의미가 아니라 좀 더 다른 게 아닐까. 모 만화에서도 기억에서 잊힐 때 사람은 죽는다고 했으니, 그런 비슷한 종류지 않을까. 하교 길 어김없이 스구루는 공중 전화 부스에 섰다. 백 엔과 함께.



100을 띄운 숫자는 사토루가 받자마자 줄어들기 시작했다. 좀 더 길게 전화하고 싶지만 용돈을 받는 입장인 스구루로써는 너무 낭비하긴 싫었다. 효울성있게 가자. 궁금한 것만 물어보고, 호기심만 채우면 잊어버리자.



"사토루, 안녕."

"안녕, 스구루는 이 시간에만 전화하네."

"아-, 응. 학교 다니니까, 나."

"에? 학교?"



그러고 보면 저번에 사토루의 질문을 씹었구나. 



"응. 나 15살이라서."

"15..."

"응."

"어리네. 진짜?"



스구루가~ 열 다섯? 깐죽대는게 꼭 정말 살아 있는 사람같다. 숫자는 어느새 반절로 줄었다. 살아있다는 게 정말이냐고,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 한 거지만 갑자기 바보같이 느껴진다.



"사토루도 밥 같은 거 먹어?"

"? 먹는데."



당연하단 말투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 그래. 그렇구나... 자기 전화에 건 게 아니었다면 깜빡 옆 집 아저씨랑 통화하는 중이라고 여겼을테다.



"...그렇구나. 뭐 좋아해?"

"단 거- 카레도 좋고."



스구루는? 알면서 떠보는 듯한 어투가 언짢다. 소면, 대답하니까 그럴 줄 알았어- 하하 웃었다.



"스구루, 오늘은 전화가 기네."

"싫어?"

"아니, 좋아. 스구루랑 얘기하는 거."



타이밍은 얄궂게도 그 때 딱 숫자는 0이 된다. 무음인 너머로 스구루는 남은 용돈을 계산했다.





*





귀신과의 전화는 오래 갔다. 용돈을 다 쓸 때까지, 하루에 백 엔씩 매일 들리다 보니 한 달 반이 지났을 쯤엔 일종의 루틴이 생겼다. 용돈을 받고 2주간은 매일, 그 뒤론 3일에 한 번씩, 한 주는 전화 없음. 



이딴 통화에 의미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스구루는 하교길마다 꼭 전화했다. 이 세상에 나만 아는 무언가랑 친구가 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학업에도, 지갑 사정에도 일절 도움되지 않지만은.



"사토루는 어디 사는 거야?"

"엉?..."

"보고 싶어."



통화 너머 귀신, 단 걸 좋아하고, 간혹 제 멋대로지만 재밌는 남자. 실제로 존재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복잡한 방법 말고도 편하게 전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목소리가 있다면 형체도 있지 않을까. 대체 그는 어떻게 전화를 받고 있는 건가. 귀신에 대한 호기심은 식었어도 사토루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커져간다.



"...나도."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나는- 잘생겼어."

"하하."



또래 애들과 얘기하는 것보다 사토루랑 말하는 게 더 즐거웠다. 27살주제에 15살들보다 어리고 철없는 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재밌었다. 



"스구루는 어디 살아?"

"우리 집 오게?"



부스에 기대 스구루는 괴담을 떠올렸다. 집까지 쫓아온다는 사토루 군, 차라리 그 괴담대로였으면 좋았지 않을까. 적어도 얼굴은 볼 수 있을테니.



"갈 수 있으면."

"진짜 사토루 군 같네."

"앙?"

"하하, 사토루, 사토루 군 괴담 알아?"

"그게 뭔데?"



당사자에게 너 이런 괴담으로 유명해-라고 말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웃기다고 생각하며 스구루는 계기판을 바라봤다. 



"음- 사토루한테 전화하면 사토루가 내 스토커가 된다는 괴담인데."

"하아?"

"자세한 건 혼자 알아 봐, 나 동전 다 됐거든."





*





"사토루, 안녕."

"나 사토루. 지금 나무 뒤에 있어."

"하하, 찾아 봤어?"





*





사토루는 신기한 귀신이다. 별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눠도 즐거웠다. 낙엽이 굴러가는 거만 봐도 즐거울 나이라고, 그런 말에 공감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이젠 좀 알 것 같았다. 백 엔만큼의 시간은 24시간 중 가장 소중해졌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은 공중 전화에 두고온 채였다.

귀신에 홀린다는 게 이런 건가.

중학생들의 화제는 빨리빨리 바뀐다. 열풍이었던 만화도, 괴담도 사그라들고 11월의 끝무렵엔 진로에 대한 이야기만이 남았다. 사토루 군이 쫓아온다던 누구누구도 멀쩡한 얼굴로 웃고 떠든다. 



고등 학교, 스구루는 어디든 상관 없었다. 목표도, 딱히 꿈도 없었다. 평범한 건 따분하고 지루하다.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커다란 힘으로 사람들을 돕는다든가, 누구를 위해 산다던가.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옛날부터 스구루는 남을 잘 깔보던 아이였다. 상대를 자연스레 아래로 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정신은 날 때부터 상위에 있어, 모든 만물이 다 약자로 보이곤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상냥함을 물려주었다. 스구루는 타인을 배려할 때 제일 충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감사를 받고 싶다거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와는 조금 달랐다. 스구루의 자기 긍정감은 남을 위한다는 행동 자체에서 나왔다.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다른 사람이 웃어야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귀신과 다르게 사토루는 음침하지 않았다. 괴담 속 귀신들은 사람을 저승길 동무삼거나 한을 풀어달라 하던데 사토루에게선 어떤 요구도 없었다. 얘기하는 게 즐겁다면서도 통화가 너무 짧다던가 백 엔보다 더 넣으라든가, 그런 말은 안했다.

그러고 보면 괴담 속「사토루 군」은 전화를 걸어온댔다. 사토루와 더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지어낸 건 아니었을까. 전화를 걸어오길 바라면서, 사토루 군 괴담을 퍼트린게 아닐까. 백 엔을 넣으면서 스구루는 생각한다. 사토루와 처음 전화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사토루를 사토루 군 괴담으로 만든 건 누구일까. 



사토루를 처음 안 사람이 자기가 아니란게 짜증이 난다. 귀신을 비웃은 건 전생의 일인 마냥 스구루는 진심이 됐다. 짜증과 초조함은 동전으로 나왔다. 계기판의 숫자가 는 만큼 부스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용돈이 거덜나는 속도도 함께 빨라졌다. "미안해. 이번 달은 오늘이 끝일 거 같아." 12월 둘째 주, 용돈 받고 일 주일만에 벌써 지갑이 텅 비었다.



"..."

"사토루?"

"이번 달만?"

"응?"

"아냐."





*





사토루와 전화하지 않는 날은 시간이 느리게 갔다. 얼굴도 모르는 귀신은 하나뿐인 친구가 됐다. 간만에 전화를 하면, 사토루는 깜짝 놀라면서 늘 이 말을 한다 : "이제 전화 안 해주는 줄 알았어." 

그리고서 목소리만으로도 알기 쉽게 기뻐하며, 그간 있던 일을 떠벌떠벌 말해왔다. 운동도 하고 쇼핑도 하고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그랬다고. 귀신 주제에 어디의 뭐가 맛있다든가. 



도쿄에 녹아있는 귀신은 도쿄의 이야기만 했다. 멀리 동떨어진 곳에 사는 스구루는 그 가게가, 그 거리가 진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가끔은 정말 살아있는 거 같아. 생각해도 말하지 않은 건 사토루가 귀신이라는 걸 잊고 싶은 탓이다. 일상을 듣고 있자면 정말로 어디 살아 있는 27살 남자 같았다. 전철을 타고 도쿄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 같지만 스구루는 당장 백 엔도 아까웠다.



12월엔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24일 저녁,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골랐다며 미안하다고 천 엔을 건네줬다. 뚯 밖의 용돈. 어떤 선물보다 좋았다. 스구루는 태연한 척 밥 먹고 씻고 웃다가, 부모님이 잘 때 집을 기어나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 말해주고 싶다. 거즘 2주만의 전화였다. 사토루, 이번에도 깜짝 놀라겠지. 용돈이 떨어질 즘이면 늘 꼬박꼬박 며칠 뒤에 꼭 전화하겠다고 말해줘도 사토루는 믿지 않았다. 매번 놀라고, 매번 그런다. 

신호음이 들리는 동안 스구루는 근질거렸다. 산타가 돼서 선물을 주러 가는 기분이었다. 사토루와의 통화를 가장 기다린 건 스구루면서도.



평소와 달리 꽤 길게 간 이후에야 신호음이 끊겼다. 들뜬 스구루는 이유가 궁금한 것보다 기쁨이 더 컸다.



"사토루, 안녕."

"..."



나 용돈을 받아서... 말하려다가 스구루는 입을 닫았다. 들뜬 기분이 바깥 공기에 식어 갔다. 



"...사토루?"



계기판의 네 자리 수는 세 자리로 바뀌었다. 침묵에 스구루는 처음으로 불안해졌다. 사토루가 없어지는 건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사토루, 듣고 있어? 난데..."

"누구야, 너."



이 말도 그랬다. 



*



"스구루는 방금 내가 죽였어."



세 자리수가 두 자리로 바뀔 동안 둘이 나눈 대화는 이게 다였다 : 니가 스구루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웃기지 마. 어쩌고 저쩌고.



"또 전화하면... 찾아가서 너도 죽여버릴거야."



사토루가 먼저 전화를 끊는 건 처음이었다.



부스 안에서 꺼진 수화기를 든 채, 스구루는 생각했다. 그 동안 내가 먼저 끊었을 때, 사토루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





1월, 2월,3월... 시간은 순식간에 흐른다. 남은 10엔들을 반환하면서 스구루는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너무 깜짝 놀라 그랬는지, 반대로 머리가 하얘져선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돈을 쓸 데가 없으니 용돈이 자꾸 쌓였다. 아직 방학이었으니 전철을 타고 스구루는 도쿄로 나갔다. 전철 너머 보이는 나무들은 겨울간 앙상했다곤 믿기 어려울 만큼 파릇파릇해졌다. 4월이면 벚꽃이 피겠고,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생...



귀신에게 생사 기준이 기억이라면, 사토루가 말한 「스구루는 내가 죽였어」는 스구루를 잊고 싶다는 뜻일까. 도착한 도쿄는 비교도 안 되게 컸고, 사람이 정말 많았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스구루 한 명따위 있던 말던 별 상관 없겠구나. 잊고 싶다고 갑자기 내버려도, 다른 사람들이 또 「사토루 군」을 하겠구나.

사토루는 스구루만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괴담이 이어질려면 소문을 내야 했는데 스구루는 주변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짜 사토루는, 나름 다정한 그 귀신은 혼자만 알고 싶었다. 그러니 필요없어진 건가. 타케시타 거리의 인파 속에서 스구루는 깨달았다. 나는「내가 없으면 안되는」걸 위해 살고 싶다고.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나약한 것들을 위해서. 



스구루는 사토루가 말한 거리의 가게를 지나쳤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 전철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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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루는 몇 살이야?



이상한 번호로 걸려온 전화, 받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익명으로 전화가 걸려오는 건 썩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근래 전화 올만한 일이 있던가. 잊어버렸던 걸지도 모른다고 가볍게 통화를 탭했다. 



들려온 건 10년 전 떠난 옛 친구의 목소리였다. 기억보단 좀 앳된 건 전화 너머라 그런가. 간만에 전화를 한 스구루는 이상한 말을 했다. 몇 살이야? 죽었어? 난 열 다섯살이야...

미친 사상을 갖더니 정말 뇌가 돌아버렸나? 얼토당토않는 컨셉을 하면서까지 전화를 하고 싶었나. 무슨 꿍꿍이냐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 연 입에선 대신 다른 말이 나왔다. 순순한 대답들. 나야 말로 이게 무슨 짓이야.

전화는 늘 갑작스럽게 끊어졌다. 끽해야 1-2분 남짓의 대화, 사토루 쪽에선 걸 수 없는 전화. 일방적으로 떠나선 이렇게 일방적으로 돌아온다. 너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탓하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전화 속 스구루는 학생 시절 정론맨도, 미쳐서 떠난 또라이도 아니었다. 



통화 내역이 쌓여갈수록 의문도 깊어졌지만 사토루는 아무 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어쩌면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걸지도 모른다. 정말 스구루인지, 목소리가 비슷한 다른 사람인진 몰라도, 이름을 불리면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누가 흉내낸다기엔 참 할 짓 없는 짓이다. 사토루는 임무 중에도 다른 일 중에도 전화가 오면 다 내팽겨치고 받았다. 신경 안쓸거라고, 다음 전화는 진짜 안받겠다고 다짐해도 손은 맘대로 움직였다.

저주나, 기억 상실이나, 아무튼 뇌 쪽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그도 아니면 고도의 계획인지. 비주술사 몰살을 위한 뭔가의 큰 그림 중 하나인지. 그러나 사토루는 녹음조차 해둘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못했다. 쇼코한테조차도.



유타와 이누마키의 임무 뒤로 주술계는 스구루를 찾아 나섰다. 사토루가 잔예를 잊어버렸을 거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이렇게 될 줄 몰랐던지. 전자가 좀 더 유력했지만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못 알아볼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태연히 나타났냐고.



옛날에 스구루는 사토루에게 자유롭다느니 뭐라느니 종종 말했다. 자유분방하고 제 멋대로라고. 욕하는 거냐고 툴툴거리면 딱히 그런 건 아니라면서, 느낀 걸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그 땐 괜찮았다. 호칭을 俺라고 하던 말던, 약자를 지키는 걸 귀찮아하건 말건, 잔소리는 잠깐이었다. 듣는 체도 안하면 스구루는 늘 '하여간 넌 참...' 하면서 넘겼다.



「괜찮아, 우린 최강이니까.」



아마나이가 죽은 이후로 그 말은 잠깐 사라졌다가, 1년 뒤 부활했다. 「사토루, 넌 최강이잖아.」라는 형태로. 자유분방에 제 멋대로인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 멋대로 「우리」에서 탈출한 스구루는 스스로가 「최강」이 아니라고도 했다. 최강이니, 약자니 뭐니. 포지션 토크는 역시 최악이다.

강함의 정의는 뭔가. 사람을 손가락 하나로 쉽게 죽일 수 있으면 최강인 건가. 그렇다면 스구루는 사토루에겐 여전히 최강이었다. 스구루의 말 한마디로 사토루는 쉽게 죽어버린다. 짜증나고, 열받고, 최악의 남자. 너 같은 거 진짜 싫다고, 혼자 있을 때는 생각할 수 있는데. 



"사토루, 안녕."



목소리 만으로 모든 전의가 상실한다. 너무 싫고 너랑 친구인 것도 널 좋아한 것도 함께 있던 3년도 다 싫고 거지같다는 음울한 분노는 순식간에 귀여운 토라짐으로 돌변했다. 가끔 돈이 떨어졌다며 당분간 전화를 못한다는 말을 할 때면 빌어먹게 서운하고 초조해진다. 늘 걸려오던 시간대에 울리지 않는 핸드폰은 신주쿠에서 본 그 등과 비슷했다.

자유분방하고, 제 멋대로인 건 너야. 3일 뒤 전화할께, 다음 주 월요일에 전화할게, 사토루는 그 말을 하나도 믿을 수 없었다. 니가 니 맘대로 하면 나도 내 맘대로 할거야. 하지만 전화가 오면 사토루는 받았다. 차단을 해 둬도 정신을 차려보면 풀려 있었다. 인정한다. 사토루는 무서웠다. 전화가 오지 않는게.



12월, 스구루는 얼굴을 보였다. 새를 타고 거지같은 애들과 함께 온 스구루는 어제 오후 5시에 발랄한 전화를 한 것처럼은 안 보였다. 심기만 뒤집고 크레이프를 처먹으러 간 남자는 아무 것도 아닌 양 오후 5시에 또 전화한다. 그러고 하는 말이, "이번 달은 오늘이 끝일 거 같아."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다음 달에 또 전화하겠다고 했지만 사토루는 믿지 않는다. 백귀야행 당일, 사토루는 스구루를 죽일 거니까.



야가는 게토라는 저주를 퇴치하자고 했었다. 스구루가 저주라면 누굴 위해 퇴치해야 하는가. 옛날 스구루처럼 약자를 위해? 유타가 한 것처럼 리카-저주를 위해? 신념도 순애도 사토루는 갖고 있지 않다. 스구루는 약하지도 않고 억지로 붙잡혀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차피 필요없고.

그러니 사토루는 스스로를 위해 스구루를 죽이자고 마음먹었다. 3년 간의 청춘 따위 너나 갖고 죽어줬으면 한다. 모두 가져가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 그럼 교사든 뭐든 때려치고, 썩은 귤들도 다 죽여버리고, 진짜로 자유롭게 살 텐데.



지옥에나 가 버려. 혼자 실컷 연습한 마무리 인사는 하지만 얼굴을 보면 나오지 않았다. 원망도 한탄도, 온갖 부정적인 말들은 다 사라지고 어쩔 수 없는 사랑스러움만이 남았다.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봄 따위 없어져버렸으면 했는데, 그런 뒤숭숭한 생각을 어떻게 했나 싶을 만큼 머릿 속 벚꽃이 만개했다.



어쩌면 사랑은 생각을 반전시키는 게 아닐까. 최선을 다해 살겠다며 떠난, 두 여고생의 양아빠도 순식간에 삶의 의지를 전부 놓았다.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죽고 싶은 사람만이 남은 공간에, 최강은 스구루였다. 스구루는 존재만으로 사토루의 의지를 전부 죽여버린다. 



스구루를 죽인 건 결국 스구루를 위해서도, 사토루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스구루가 몰살시키고 싶어한 비주술사를 위해서도, 다치고 지쳤을 제자들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거기엔 정의도 대의도 순애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스구루가 「사토루는 나를 죽일거야」라고 믿었으니까. 믿음에 배반하지 않게, 사토루는 무언의 명령에 따랐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전화는 뭐였냐고 물어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전화는 또 걸려온다. 스구루가 죽은 이상, 이 전화가 다른 놈한테 걸려 온 건 확실했다. 그러나 게토는, 저주는 퇴치해도 남아있어서 사토루는 통화를 눌러버렸다.





*





"스구루는 방금 내가 죽였어."



니가 스구루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웃기지 마.



"또 전화하면... 찾아가서 너도 죽여버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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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쇼코는  소위 영감이 있는 애였다. 어릴 때부터 귀신을 봤다.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만질 수도 있었다. 다년 간의 경험으로 배운 건 「귀신같은 건 못 보는 척 하는 게 좋다」였다. 귀신한테도 사람들한테도 시달려 귀찮아지기만 하니까.



"..."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식, 강당에서 쇼코는 무심코 두 번이나 돌아봤다. 남학생 줄 맨 끝에서 두 번째, 이상한 앞머리가 귀신을 주렁주렁 달고 선 탓이다. 어찌나 많이 붙어있는지 뒷사람 얼굴이 안 보일 정도였다. 쌍둥이 귀신이 한 쌍, 남자 귀신 셋, 처녀귀신 하나.



'우와....'



쇼코는 저 앞머리가 귀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인지 고심했다. 신기한 건 저렇게나 달고 다니는데 멀쩡해보이는 안색이었다. 호기심은 솟지만 쇼코는 분별력있는 사람이었다.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피해 다녀야지. 



하지만 열받게도 같은 반이 됐다. 더군다나 스구루는 친화력이 넘치는 애였다. 첫 날은 어찌 저찌 도망다녔어도 다음 날 신발장에서 마주쳤을 땐 무시할 수 없었다. 



"안녕, 우리 같은 반이지?"



하루만에 귀신이 좀 줄었다. 여전히 매달려 있는 녀석들은 쌍둥이 여자들. 어깨, 팔, 다리, 목에 칭칭 감고도 뚜벅뚜벅 잘도 서 있다. 내심 이 녀석이 키가 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쇼코의 옆자리나 앞자리였다면 수업 받긴 글러먹었을테니까.



"...응. 안녕."

"이름이... 쇼코던가."

"아...응."

"혹시 내 이름 기억해?"

"응."



아는 척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대화의 기술이 장난 아니었다. 신발장에서 반으로 올라갈 때까지 쇼코는 중학교가 어디인지, 어디 쪽 사는지, 친구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까지 다 털렸다. 스구루는 대화 중간 중간, 무의식인지 매달린 귀신들을 쓰다듬었다.



나처럼 보이는 구나. 하지만 쇼코는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다. 알게 된 지 하루 이틀된 녀석 따위 시들어서 앓던 말던 무슨 상관이라고. 



"스구~루-"



반에 들어가면 그새 친구를 사귀었는지 누가 인사를 해왔다. 어제 스구루 뒤에 가려져있던 키 큰 녀석. 앉아있는 책상 아래로 긴 다리가 볼품없이 마구 삐져나왔다. 저렇게 길면 바르게 앉기도 힘든가.



"사토루, 안녕."



185cm와 195cm는 뒷자리에 나란히 당첨이었다. 앞자리로 가는게 왠지 자존심 상했다. 삐뚜름하게 앉아 옆자리 애한테 인사하는 척, 슬쩍 뒤를 쳐다봤다. 



"뭐 해?"

"뭐가 묻어서."

"그래? 고마워."



쇼코는 사토루도 보인다는 걸 알았다. 부자연스럽게 어깨, 머리를 마구 털어주니까. 귀신은 사토루가 손을 휘저으면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칫. 혀 차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아마 쇼코와 다르게 두고 볼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귀신 둘은 사토루를 어마어마하게 째려봤다. 나는 절대 아는 척 안 해야지. 다시 다짐해본다. 





*





고등학교의 쉬는 시간은 시시한 잡담으로 꽉 찼다. 초등학생 시절 괴담들이 다시 입에 오르내리며 역시 아직 아이라는 걸 증명하듯 다들 들떴다. 분신사바부터, 밤 12시에 입에 칼을 물고 거울을 보면 미래 배우자가 보인다느니 하는 미신따위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어린 시절 한 번쯤 해봤을 법한 강령술들, 더해 '니가 지어낸 거 아냐?'싶은 기상천외한 얘기들이 재잘재잘 여러 입에서 튀어나왔다. 몇몇은 중2병 후유증을 앓았다. 나는 영감이 있다며 무당을 자처하는 녀석이라던지. 하지만 대부분은 성숙해졌다. 솔직하게 실패담을 말하던가, 진짜 따라하냐고 웃는다던가.

쇼코의 반도 마찬가지로, 반 애들 모두 '그 걸 진짜 해?', '그게 되겠냐.', 떠들어댔다. 그럴 때마다 스구루에게 매달린 귀신들이 흘낏거렸다.



친해지지 않겠다, 거리를 두겠다던 다짐은 금새 무너졌다. 한 달도 안 돼서 같이 점심을 먹을 정도로 친해져 버렸다. 사토루-쇼코-스구루의, 장신 남자 둘에 낀 여자 하나 조합. 미남 사이 낀 쇼코를 질투할 법한데 그건 다른 학교 관점이고, 같은 학교 여자애들은 완전 반대였다. 



쇼코, 불쌍해...



사토루와 스구루는 미남이었어도 외모보단 내면으로 유명했다. 일명 쓰레기들. 쇼코는 쓰레기 샌드 당한 피해자... 그런 이미지였다. 



한 달, 그 사이 쇼코는 귀신이 보인다는 걸 알렸다. 생각보다 스구루가 친해질 만한 사람이었다. 쓰레기, 쓰레기 욕하지만 같이 노는 데에는 재미있었다. 쇼코는 친한 사람에겐 무른 타입이었고.



너, 귀신 제령 안 해? 어느 날 점심시간, 물으니 놀란 건 사토루였다. 쇼코, 너도 보였냐고, 왜 보이면서 이제까지 아무 말 안했냐고 팔짝팔짝 뛰었다. 스구루는 그 와중에도 매달린 귀신들을 달랬다.



"이거 봐! 스구루, 이런다고!"

"별로 해 끼치지 않으니까 괜찮잖아."

"믿을 수 없네- 귀신인데? 귀신이 좋아? 그런 타입이야? 아니면 귀접이라도 했냐?"



말을 꺼낸 건 쇼코였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망설임은 없었다. 쇼코는 도망의 천재였고 쟤네는 싸움의 천재였다.



"사토루, 말이 심하잖아."

"그게 아니면 뭔데? 주렁주렁 주렁주렁. 퇴치해 준다고 해도 싫다~ 내버려 둬라. 보는 이 쪽은 엄청 거슬리거든."

"죽인 사람한테 복수하고 싶대서 찾아주려는 것 뿐이야."

"그렇다고 매달고 다닐 이유 있어? 옆자리에서 얘가 내 머리를 얼마나 잡아당기는지 알아? 아, 피해거든-! 나한테 해 끼치고 있거든! 제령해! 돈 빌려줄테니까 굿 하고와!"

"사토루가 안 괴롭히면 얘네도 가만히..."



먹다 만 도시락을 들고 쇼코는 계단을 내려왔다. 한 층 내려오고 나서야 목소리가 멎었다. 기차 화통 삶아먹은 자식들.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2학년 교실로 향했었다.

그 이후로 쇼코도 사토루도, 스구루의 반려 귀신들에게 별 터치를 안했다. 귀신을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하는지 스구루는 매일 구색을 다르게 데려왔다. 스구루 왈, 편애는 안되니까. 사토루는 웩- 눈을 뒤집어깠다. 



그 날 나온 괴담은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이었다. 네 가지 방법이 있다던가. 엘레베이터나, 화장실이나, 계단이나, 전철을 타고 간다고. 쇼코가 듣기엔 터무니없었다.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사토루도 마찬가지로 콧방귀를 꼈다. 저런다고 되겠어? 버튼 몇 개누르고, 변기 물 내리고, 계단 좀 걷고, 전철에서 잔다고 그렇게 되겠냐고. 



"그치 않냐, 스구루?"



스구루는 그냥 가만히 웃었다. 



"오늘 기운이 좀 없다?"

"더워서 그래..."







1-1







액정에 뜬 건 낯익은 공중 전화 번호. 또 전화하면 죽여버린댔는데, 짜증내면서도 사토루는 받았다. 새로 맡은 1학년들은 사이가 좋았다. 가끔 옛날 꿈을 꿀 정도로 청춘이었다. 



같잖지만 꿈을 꾸고 나면 그리워진다. 스구루는 죽었지만 저주는 죽지 않았다. 거지같은 감정들은 내내 남아 있는 채다. 그러니 사토루는 계속 교사 일을 했다. 혼자 있자면 애틋함보다는 불쾌함이 더 크다. 남은 원망들은 이제 상대가 죽었으니 발산할 곳도 없었다. 죽어버려, 이미 죽었지. 맞다. 젠장.



그래서 사토루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놈한테라도 쏟아붓고 싶었다. 학습 능력 없는 자식, 바보, 죽어.



"사토루, 안녕."

"또 전화하면 죽인댔잖아."



짤랑 짤랑, 동전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동전을 몇 개나 넣는 건지, 사토루는 길게 전화할 생각은 없는데 바보같이.



"응. 그런데 할 말이 있어서."

"뭐-?"

"사토루, 사토루는 살아 있지?"



전과 다른 질문에 이번에 사토루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침묵에도 아랑곳않고 통화 너머 녀석은 재차 물어봤다.



"사토루는, 사람이지?"

"....당연한 걸."

"사토루, 스구루를 죽였다는 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내가 죽였어."



욕하고 끊을 생각이었지만 입에선 욕 대신 대답이 나온다. 



"사토루, 내 이름을 어떻게 맞췄어?"

"...목소리가 같으니까. 아니, 넌 스구루가 아니잖아."

"머리색 하얘?"

"아?"

"사토루, 나 본 적 없지만, 사토루 머리 색. 하얗냐고."



이때 쯤, 사토루에게도 위화감이 들었다. 



"...응, 뭐."

"눈은? 파래? 반짝반짝하지. 그리고, 성은, 고죠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맞아?"

"....맞아."



침묵 사이 숨소리만 들렸다. 사토루는 전화를 끊기가 어려웠다. 전화가 몇 분이 남았는지 궁금했다. 



"사토루. 다른 세계야. 다른 세계의 너랑 내가 지금 전화하고 있는 거야."

"하?"







2







고등학교에 입학할 쯤엔 거둬들인 귀신이 제법 됐다. 귀신이라기보단 제 2의 가족이려나. 처음 거둔 가족은 어린 쌍둥이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발견했다. 학대당해 죽었다고,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는 걸 달랬더니 달라붙었다. 그 후로 영감이 트였는지 귀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날이면 가졌을 의문은 지금 와선 상관없어졌다. 귀신은 한이 맺혀 죽은 영혼에 한이 모여 태어난 거였으니 어느쪽으로 봐도 맞다. 쌍둥이, 미미코와 나나코만 해도 학대 당한 아이들의 한이 잔뜩 쌓여 있다.



죽인 사람을 찾아주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여러 한이 맺힌 둘은 누가 죽였는지 콕 집어 말하지 못했다. 우릴 도와주겠다고 한 건 게토님이 처음이에요. 그 말에 안쓰러움과 동시에 충족감을 느꼈다.

남을 돕는 건 좋다. 버려진 귀신들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다. 귀신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뭔가의 존재에게 힘이 된다는 건 뜻 깊은 일이었다.



그러나 충족감 뒤엔 기묘한 감정이 뒤따르곤 했다. 의미 있고, 사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즐겁냐고 물으면 그 건 아니었다. 16년, 생을 살면서 즐거운 건 「사토루 군」과 전화하던 시간 뿐이었다. 

스구루는 그 때까지도 전화하던 사토루가 「사토루 군」이라고 믿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의 시작에 괴담 열풍이 돌기 전까진. 다른 세계에 간다느니 바보같은 이야기. 중학생들과 달리 신봉하는 녀석들은 별로 없었으나 스구루는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다른 세계.



귀신이 아니라 다른 세계랑 이어졌다고 하면 이해가 갔다. 정말 살아있던 것처럼 구는 거라던지. 날 죽였냐느니 뭐라느니 수수께끼의 말이라든지.



「사토루 군」을 따라했을 때 다른 세계의 사토루랑 이어졌다. 그럼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을 따라하면, 정말 갈 수 있지 않을까? 평행 세계가 무수히 많다고 해도, 스구루에겐 확신이 있었다. 분명 사토루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거라는.



"그런 거 불가능해."

"지금 우리도 전화하고 있잖아."



동갑의 사토루를 보고 얻은 확신이었다. 목소리가 너무 똑같았다. 단 걸 좋아하는 것도. 말투는 조금 달랐지만. 그 쪽의 사토루가 아는 스구루도, 분명 게토 스구루일 테다.



스구루는 두 번째로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사토루」에게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아무나가 아니라. 같은 사토루라도, 동갑의 사토루와 20대 중후반의 사토루는 달랐다. 아니, 확연히 다른 사람이다. 동갑의 사토루는 15살의 스구루를 모르니까, 하교 길마다 전화하지 않았으니까. 



진심으로 웃은 적은 없었으니까.



"사토루, ...보러 가도 돼?"



계기판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스구루는 주머니랑 가방을 닥치는 대로 뒤졌다. 한 두개 떨어진 10엔을 다시 쑤셔 넣는다. 짤랑, 짤랑. 올라가는 20.



"사토루가 왜 그쪽의 나를 죽였는지는 몰라. 하지만 싫어서 죽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

"... 왜 그렇게 생각해?"

"오늘, 전화 받았잖아."

"...."

"보러 가도 돼?"



된다고 말해 주면, 될 때까지 매일 할 거다. 엘레베이터든, 계단을 오르내리든, 뭐든. 지금, 이쪽 세상의 사토루와 똑같이 자랐던 아니면 살이쪘던, 키가 달라도 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안 돼."

"...왜?"

"너 날 좋아하는 구나."



수화기를 붙잡고, 스구루는 가만히 있었다. 숫자는 100에서 막 80으로 줄었다. 



"지금 니 말이 맞다면, 네가 진짜 다른 세상의 게토 스구루라면...만나면 나도 널 좋아하게 되겠지. 스구루니까. 근데 그러고 싶지 않아."

"왜?"

"스구루가 불쌍하잖아."

"...이미 죽었어도?"



숫자는 바뀐다. 40.



"그래서 상관없다고? 너무한 말을 하네."

"...사토루, 사토루도 나를 좋아하잖아."

"아니야, 아직 안 좋아해."

"...스구루를 좋아하잖아."



그리고 나도, 나도 스구루야. 말하기도 전에, 



"응, 근데."



다시, 20.



"나한테 스구루는 하나뿐이라서."



떨어지는 숫자만큼 기분도 내려간다. 신나서 얼른 오라고 해줄 줄 알았는데, 머리부터 냉수를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당장 시도하려고 가족도 다 떼어놓고 왔건만. 그렇구나, 나도 그냥 16살일 뿐인가.



"니가 아니야, 미안."



전화를 막 받았을 때 살기어린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다. 그렇다고 예전에 전화했을 때만큼 부드럽지도 않았다. 돈은 다 떨어지고 숫자는 0이 됐다.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구나. 하긴 사토루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만나면 좋아하게 될 테니까 싫어」라던가 씨부렸지만 아마 거짓말이다. 스구루가 동갑의 사토루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저쪽의 사토루도 스구루를 좋아하지 않을 거다. 그의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자리는 이미 만석에 영원히 비지 않는다.



스구루는 수화기를 돌려놓았다. 고작 3개월 남짓의 즐거움은 청춘으로 남아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 첫 사랑이 다른 세계의 한 번도 못 본 연상의 남자라니, 아무한테도 말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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