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cm:@아화)
겁쟁이페달/나루미도

#1

 

"여기가 바로 오사카의 명소, 히라카타파크여!!”

놀이공원에 도착한 나루코가 자신만만하게 팔을 뻗으며 말했다.

미도스지는 눈을 빛내는 나루코를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눈앞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놀이기구들을 보았다. 딱 보기에도 가족 친화적인

놀이공원이었다. 오사카의 명소를 굳이 꼽자면 USJ가 훨씬 낫지 않나.

나루코는 그런 미도스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버럭 외쳤다.

“뭘 모르는구먼! 쓸데없이 사람이 많이 모이고 정신없는 곳보단 여기가

훨씬 낫당께!”

결국 거기보단 방문객이 적다는 소리잖아. 미도스지는 가늘게 뜬 눈으로

나루코를 보았다. 그런 눈빛을 보내든 말든 나루코는 미도스지의 손을 덥석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평소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작은 손이 야무지게도

저보다 큰 손을 잡는 것이 조금 웃겼다.

“푸푸, 놀이공원에 와서 신나기라도 한 거야? 어린애 같네, 콩알군

아니랄까 봐.”

미도스지가 눈꼬리를 휘며 말하자 나루코는 의외로 화를 내지도 않고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당연한 일 아닌감? 너랑은 꼭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니까 말이여. 지금

최고로 기분 좋구먼.”

“…….”

꼴값. 꼴값도 이런 꼴값이 없다. 꼴불견이야.

“잘도 그런 말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말하네, 콩알군은. 역시 어린,”

“부끄러워할 필요 없당께! 자, 자~ 얼른 가자고! 얼른 안 가면 줄이

억수로 길어질 테니 말이여. 그럼 일찍 온 보람이 없잖여!”

푸아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하는 나루코를 따라 서둘러

걷게 되었다.

놀이공원이라기보다는 놀이기구가 가득한 꽃밭에 가까운 풍경이 지나간다.

노란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추운 줄도 모르고 잔뜩 피어 있다. 노란색,

노란색. 온통 노란색으로 가득한 밝은 풍경. 그런 것들에서 눈을 돌리면

앞서 걷는 작은 체구의 빨간 뒤통수가 보인다. 화려한 것만큼이나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이 남자가 이런 곳에 저를 데려온 것은 아마도 평소

시끄러운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를 위한 배려이리라. 꼴불견. 어차피

놀이공원은 어딜 가든 사람이 많으니까 상관없는데도. 미도스지는 뽈뽈

다리를 바쁘게 놀리는 나루코의 우스운 모습을 구경하며 걸었다. 그리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목제 롤러코스터 앞이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역시 놀이공원의 첫 시작은 롤러코스터 아니겠는감?”

이런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지 정도는 물어보고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 놀이기구는 어지간해서는 다 거기서 거기니까 딱히 가리는 건

없지만. 미도스지는 한마디 해줄까 하다가 귀찮아져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개장과 동시에 입장하자마자 달려온 덕분인지 줄은 길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루코는 여전히 미도스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

놀이기구를 세 개 정도 연속으로 타고 났더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노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한 뒤에는 다시 놀이기구를 탔다가 또 나루코의

손에 이끌려 산책을 하게 되었다. 온통 꽃으로 가득한 산책로에는 커플과

가족들이 보였다. 남자 고등학생 둘이서 손을 잡고 걸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이제 손 좀,”

“어! 거기 아저씨!!”

대뜸 지나가는 중년남성을 보고 소리친 나루코가 사진을 찍어달라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러자 일행으로 보이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한

중년남성은 휴대폰을 받아 들고선 포즈를 취해보라고 했다.

“무슨….”

“딱딱하게 서 있지 말고 자세 좀 잡아보랑께.”

그렇게 말한 나루코는 화단으로 올라가더니 아예 어깨동무를 해왔다.

눈높이가 더 높아진 나루코를 떨떠름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찰칵, 소리가

들렸다.

“이쪽이 아니라 저길 봐야 하지 않겠남?”

캇카카! 이상한 웃음소리를 흘린 나루코는 신이 났는지 아예 머리를

맞대어오기까지 했다. 다시 한번 찰칵, 소리가 들린다. 멍하니 있는 사이

두세 번은 더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랑 둘이서 온겨? 사이가 좋구먼~”

중년남성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한다. 나루코는 감사 인사를 하고선

무어라 덧붙여 말하려는 듯했다. 친구가 아니라…. 미도스지는 다급하게

나루코의 입을 틀어막고 대충 고개를 까딱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중년남성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휴대폰을 돌려주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푸하! 왜 갑자기 입을 틀어막는겨!”

“아주 소문을 내지 그래, 콩알군.”

그러자 눈을 깜빡거리던 나루코가 크게 웃으며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뭐여, 부끄러워서 그랬던겨? 캇카카! 너도 귀여운 구석이 있구먼!”

웃음을 그친 나루코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당께. 놀이공원에서는!”

그러고는 멱살을 홱 잡아당겨 상체를 내리게 하더니 쪽, 뺨에 입을

맞춘다.

“……!!”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쪽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도스지는 곧바로 나루코를 돌아보았다. 나루코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여. 신경 쓸 필요 없다니께. 다들 저마다 좋은 시간을

보내느라 다른 사람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는구먼.”

그 말대로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고

주변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미도스지는 나루코의 이마를 콩, 때려주고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미역이라고 부르며 급하게 따라잡는 소리가 들린다. 꼴값. 꼴불견.

미도스지는 아직도 촉감이 남아 있는 듯한 뺨을 매만지며 조금 더

서둘러서 걸었다

 

 

 

 

#2

 

 

조금 이르게 저녁을 먹은 뒤에는 놀이기구를 하나 더 탔다. 그쯤 되니

해가 다 져서 놀이공원은 불빛으로 가득했다. 하얗고 노란 불빛들을 보니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중앙에는 때 이른 크리스마스트리까지 꾸며져

있다. 그 환한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무언가 커다란 것이 불쑥

눈앞에 들이밀어진다.

“역시 여기까지 왔으면 솜사탕은 한 번 먹어줘야 하지 않겠남?”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치고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싶더니 근처 노점에서

솜사탕을 사 온 모양이었다. 민들레처럼 샛노란 솜사탕이 허공에서

둥실둥실 흔들린다.

“얼른 안 받고 뭐혀?”

얼결에 막대를 받아 들자 나루코가 곧바로 왕, 한입을 물어버렸다.

나름대로 크게 베어 문답시고 문 것 같지만 막상 솜사탕은 아주 작게 패어

있었다.

“푸푸, 먹을 거면 좀 더 제대로 먹어보지 그래.”

그래서야 간에 기별은 가겠냐며 비웃자 흥 콧바람을 분 나루코가 말했다.

“너무 작아지면 안 되니까 그런겨.”

“음?”

“그러니께….”

그러고는 손을 모아 입가에 가져가더니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키도 작은데

거기서 작게 중얼거리면 들릴 리가 있나. 미도스지는 상체를 숙여 나루코의

입을 향해 귀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불쑥 뻗어온 손이 뺨을 잡아 얼굴을

돌려버린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입술에

맞닿았다 금방 떨어졌다.

“생각보다 이런 거에 잘 넘어가는구먼?”

씨익 웃는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아. 커다란 솜사탕을 겨우 이런 짓을

하기 위해 사 왔다는 말인가. 미도스지는 얄미울 정도로 환한 얼굴에

폭신한 솜사탕을 문질러버렸다.

“으브븝?! 이게 뭐 하는,”

미도스지는 뒷말이 이어지기 전에 나루코의 멱살을 붙잡아 당겼다. 다시

한번 맞닿은 입술은 조금 더 길게 붙어 있다가 떨어졌다.

“가릴 거면,”

조금 더 큰 걸 사와야 하지 않겠어? 콩알군. 눈을 접으며 말하자

머리카락만큼이나 새빨갛게 물든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입술을 혀로

훑어내자 단맛이 느껴졌다. 무, 뭐, 무슨…. 바보같이 말을 잇질 못하는

꼴은 우스웠으나 퍽 보기 좋았다. 미도스지는 솜사탕을 크게 베어 물며

이번에는 제가 직접 나루코의 손을 잡았다. 어쩌면 놀이공원 특유의 붕 뜬

분위기에 저도 물들어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미도스지가 치바현으로 오겠다고 했다. 무려 8시간이나 걸리는 심야고속버

스를 타고. 나루코는 급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맛집을 추천받아야했다.

아니,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한단 말인가. 항상 상대를 만나러

직접 오사카까지 내려가는 것은 나루코였다. 그것에 딱히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미도스지야 원래 살던 곳에서 멀리 이동하는 것이 힘들 테고,

자신은 겸사겸사 할머니를 뵈러 가는 김에 내려가면 될 일이니까. 그리고

오사카에서 보면 무엇보다도 아는 곳이 많으니 편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미도스지가 직접 이곳까지 온다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루코는 그렇게 무슨 정신인 줄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추천받은 맛집

리스트를 우르르 적어 내려갔다. 미도스지는 내일 이른 아침에 도착할

테니까 저도 일찍 일어나 마중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연 곳이 없을

텐데… 24시간 카페라도 가서 시간을 때워야 하나? 점심시간까지?

“크아아아!!”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자 화들짝 놀란 오노다가 이쪽을 돌아본다.

오노다에게도 뭐라도 물어볼까 싶었지만 아마도 아키하바라에 있는 곳들만

추천할 것 같았다. 교토에서 찾아온 연인을 데리고 아키하바라에 데려가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거라면 모를까, 자신이나

미도스지나 둘 다 자전거 말고는 딱히 관심이 없으니 아키하바라는 당연히

제외다. 미안하구먼, 오노다. 나루코는 속으로 오노다에게 사과를 하며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눈을 뜬 나루코는 급하게 머리를 감고 옷을 챙겨 입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나루코는 잠들기 전까지 챙겨보았던

맛집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집을 나섰다.

*

많은 사람들 가운데 있어도 한눈에 들어오는 멀대 같은 체구의 남성이

하나 보인다. 단정한 앞머리에 비해 삐죽빼죽 튀어나와 있는 긴 뒷머리.

길쭉한 팔다리.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미도스지 아키라가 맞았다.

“미도스지!!”

멍하니 서 있는 미도스지를 크게 부르자 이쪽을 천천히 돌아본다. 하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이 일순간 살짝 접힌 듯도 보였다. 나루코는 서둘러

걸음을 옮겨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는 미도스지에게 다가갔다.

“아침부터 기세가 좋네, 콩알군.”

푸푸, 웃은 미도스지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잠긴

것을 보니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여까지 왔는데 가고 싶은 곳은 따로 없는겨?”

“가방이 무거워.”

동문서답이다. 하지만 이런 대화는 익숙했다. 나루코는 미도스지의 가방을

빼앗아 들고 앞장서서 걸었다.

“봐둔 데가 있응께 거기로,”

“너희 집.”

“… 엉?”

순간 벙쪄서 돌아보자 미도스지가 마스크를 내리고 다시 말했다.

“왜, 너희 집은 가면 안 돼?”

“어… 아마 도착할 때쯤 되면 다들 나가 있긴 할 것 같은디….”

그럼 됐네. 짧게 대꾸한 미도스지는 다시 마스크를 올렸다.

집에 오니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침부터 다들 서둘렀던 탓인지 집안은

조금 너저분했다.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려 나루코는 곧바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치웠다. 그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미도스지는

멍한 얼굴로 현관에 가만히 서 있었다.

“헉, 거기 서서 뭐 하고 있는 건감? 어서 들어오랑께!”

그제야 집안으로 들어선 미도스지는 아무 말도 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대단히 볼 것도 없는 평범한 집구석이구먼…. 뒷머리를 긁적인 나루코는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냈다.

그리고 컵에 음료수를 따르다가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보니

미도스지가 서 있었다.

“안 들어가고 뭣하는겨?”

“네 방이 어딘데?”

고개를 기울이며 미도스지가 묻는다. 아, 바본가. 방이 어디인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나루코는 음료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쫄랑쫄랑 뒤를 따라온 미도스지가 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방을

구경했다.

"캇카카! 이거 생각보다 부끄럽구먼!”

편히 앉아 있으라고 했더니 방바닥에 풀썩 앉아 가방을 뒤진 미도스지가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교토 화과자였다. 어차피 하루만 머무르고 가는데

뭐 이리 큰 가방을 메고 왔나 했더니 선물로 과자를 사 오느라 그런

모양이었다.

“뭐 이런 걸 다 챙겨오고 그러남. 멀리서 오느라 힘들었을 텐디.”

그러자 무릎을 모아 턱을 얹은 미도스지가 시선을 다른 데 두고 말했다.

“처음 오는 거니까. 너희 집.”

별거 아닌 말인데 왜 이리 낯 뜨겁게 들리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나루코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화과자를 받아 들고 방을 나섰다.

“과자 담아올 테니께 그거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으랑께.”

미도스지가 챙겨온 화과자랑 집에 있는 다른 과자를 몇 개 담아 그릇을

챙기고 갔더니 미도스지는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방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이라도 할 줄 알았건만 의외로 예의를 차리는 모양새였다. 연인의 낯선

모습이 새로웠다. 나루코는 미도스지의 바로 옆에 풀썩 주저앉아 먼저

화과자를 먹었다. 은은하게 달달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아, 차를 타올

것을 그랬나. 뒤늦게 든 생각에 뻘쭘해하고 있으려니 미도스지가 화과자를

집어 들어서… 내밀었다.

“음?”

“입 벌려."

저도 모르게 입을 아 하고 벌리자 그 안으로 작은 화과자를 쏙 집어넣은

미도스지가 반응을 구경하듯 지켜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 달구먼.”

그 외에는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긴장된담.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도 시선은

미도스지에게 고정된 채였다. 이쪽의 반응을 살피는 듯하던 미도스지는

눈을 접어가며 푸푸 소리내어 웃더니 입을 벌렸다.

“……!”

순간 그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있던 나루코는 한 박자

늦게 과자를 집어 들어 미도스지의 입안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입을

다물고 몇 번 우물거리던 미도스지가 입안에 든 것을 꿀꺽 삼키며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너무 멀어.”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루코는 덩달아

미도스지에게 머리를 기대며 대꾸했다.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구먼. … 고맙당께.”

악기를 연주하듯 방바닥을 작게 두드리던 손이 슬금슬금 뻗어와 손을

잡는다. 손의 크기를 가늠하기라도 하는 듯 손을 주물거리던 미도스지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변태 콩알. 무슨 생각을 하길래 손이 땀범벅이야?”

“뭐, 뭣… 아니랑께!! 이, 이건 … 네가 내 방에 있다고 생각허니깐…

그냥, ….”

장거리 연애를 하다 보니 간혹 제 집에 있는 연인의 모습을 그리고는

했다. 특히 제 방 안에 있는 미도스지의 모습을. 그런데 그게 실현되었다는

게 어쩐지 실감이 안 났을 뿐이었다. 그런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자 가만히

듣기만 하던 미도스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 엉?”

“감상은?”

어느새 고개를 든 미도스지는 이쪽을 보고 있었다. 코앞에서 눈꼬리를 휜

채로. 마치 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 억수로 기분 좋구먼.”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간신히 대꾸하자 입꼬리를 비죽 올린 미도스지가

주물럭거리던 손을 맞잡았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자 시야가

어두워지고 말캉거리는 것이 입술에 닿는다. … 역시 차를 타올 것을

그랬나. 지나치게 단맛이었다.

 

 

 

 

#4

 

 

나루코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눈을 깜빡였다. 두꺼운 이불 안에는

따뜻하고 기꺼운 체온이 가득하다. 옷 한 겹 걸치지 않은 살갗이 맞닿는다.

그 촉감이 기분 좋아 바로 옆에 누운 이를 끌어안고 마른 몸에 쪽쪽 입을

맞추고 있으려니 품 안의 몸이 움직인다.

“아침부터 기운도 좋네, 콩알 군은.”

“어제는 이름을 잘만 불러주더니 또 그 말이여?”

푸푸. 머리 위로 짧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길쭉한 팔이 들리고… 딱콩.

이마를 때린다. 아야! 나루코는 일부러 엄살을 부리며 이마를 못 때리게 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흠칫 굳은 몸이 덩달아 끌어안아 온다. 어색한

감이 있는 손길은 손으로 보듯이 등을 느릿하게 더듬었다. 그러더니 미약한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을 매만진다. 어제 미도스지가 할퀸 곳이었다. 캇카카,

이제 와서 부끄럽기라도 한겨? 간지러우니께 그만 하랑께. 웃음을 흘리자

퍽, 등을 치는 손길이 좋았다.

“좋은 아침이구먼.”

“…… 좋은 아침.”

마지못해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나루코는

미도스지의 어깨와 가슴팍 위로 입을 맞추었다. 순흔이 가득 남은 게 보기

좋아 밝은 색의 피부에 다시 입술을 대고 세게 빨아들이자 피깃,

미도스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떨어져 나가다 못해 아예

뱀처럼 침대 위에서 미끄러지듯 굴러내려 간 미도스지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 씻고 올래.”

머리카락이 짧은 덕분에 붉어진 귀가 전부 눈에 들어왔지만 나루코는

웃으며 미도스지를 보내주었다. 여기서 더 장난을 쳤다가는 한두 대로는

끝나지 않을 만큼 맞을 게 분명하기도 했고.

미도스지가 씻는 동안 무슨 요리를 해줄까, 고민하며 넓은 침대 위에서

잠깐 굴러다니던 나루코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

 

 

베이컨을 굽고, 남은 기름에 적당히 간을 한 계란물을 풀어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토스트를 구워낼 때쯤이 되자 미도스지가

비적비적 욕실에서 나왔다. 아예 욕실 안에서 옷까지 챙겨입었는지 반팔과

반바지를 전부 입은 상태였다.

“아쉽구먼.”

“뭐가.”

다 알아차린 듯한 눈을 하고선 그렇게 묻는다. 휘어진 눈꼬리가 귀여워

입술을 쭉 내밀었더니 입 대신 손이 내밀어지고 툭 튀어나온 입술을

잡아당긴다. 으브븝! 그러자 키득대며 웃은 미도스지는 자리로 가 앉았다.

툴툴대던 나루코는 그런 미도스지의 앞에 준비한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놓고 보니 막상 식탁이 비어 보인다. 뭐라도 하나를 더 만들어볼까.

그런 생각에 냉장고를 열어 기웃거리고 있으려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미도스지가 뒤로 다가와 몸을 안아왔다.

“뭐여? 옷은 꽁꽁 싸매 입고 나오더니 아침부터 귀여운 짓을 하는구먼.”

“어느 집 변태 콩알이 욕실 앞에서 달려든 적이 한두 번이어야 말이지.”

냉장고는 그만 뒤지고 자리에 앉기나 해, 하는 말에 결국 냉장고를 닫자

여전히 뒤에 달라붙어 있는 미도스지가 아예 저를 안아 들고 자리에

앉히려고 든다. 내 발로 갈 수 있으니까 내려달랑께! 발버둥을 치자 풋푸푸

웃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 직접 자리에 앉혀둔 뒤에는 우유를 가져와 잔에

따라주기까지 한다.

“많이 먹고 많이 커야지, 콩알 군.”

나루코는 뚱한 눈으로 미도스지를 보다가 우유를 한꺼번에 마셔버렸다. 한

잔 더 달랑께, 하고 잔을 내밀자 기꺼이 우유를 더 따라준 미도스지는

자리에 가 앉았다.

따뜻한 토스트를 한 입 먹고 베이컨을 잘라 먹는 미도스지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진다. 동거하고 난 뒤로 몇

번이나 본 풍경이건만 여전히 가슴이 간질거렸다. 나루코가 비죽비죽 웃고

있자 미도스지는 나루코의 앞그릇에도 음식을 놓아주었다.

“맛은 어떤감?”

“먹을 만하네.”

동거를 하고 처음 음식을 했을 때 들은 말에 비하면 극찬이었다.

나루코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저도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오늘 일정은?”

“딱히 없구먼. 오랜만에 데이트라도 어뗘?”

“점심에 강의 하나 있어서 안 돼.”

아쉬워서 축 늘어지자 웃음을 흘린 미도스지가 덧붙였다. 정 그러면 학교

앞으로 오던가. 그 한마디에 나루코가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도스지가 먼저 데이트하자는 말을 꺼내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입을 떡 벌리고 바라만 보고 있으려니 벌어진 입에 푹, 음식이 들어온다.

“으븝!”

“바보 같은 얼굴 하지 말고. … 그래서, 대답은?”

나루코는 서둘러서 입 안에 든 것을 우물거려 꿀꺽 삼켰다.

“몇 시까지 가면 되는겨?”

“3시쯤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잠시 스케줄을 확인하는 듯하던 미도스지가 답했다. 나루코는 싱글벙글

웃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학교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라도 있는감? 분위기

좋은 카페라든지? 시간이 시간이니 카페부터 갔다가 식사하고 영화라도

보러 가는 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자 가만히 듣고 있던 미도스지가

손을 들어 검지로 이마를 꾹 누른다.

“오늘 일정은 내가 짤 거니까 콩알 군은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

그 말에 나루코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새 식사를 마친 미도스지는

설거지를 할 테니 빨리 먹기나 하라며 기어이 다시 한번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이러다가 짱구 이마가 되면 어쩔 거냐며 왁왁대는 나루코를 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미도스지는 프라이팬을 닦기 시작했다. 나루코는

서둘러 저도 식사를 마치고 손을 거들었다. 평온한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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