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키소스와 에로스
닌자보이란타로/하치라이

 

 

 

 

 

 

0

 

 

"왜 하필 라이조 얼굴이야?" 

 

 

숱하게 들어온 질문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사부로는 처음엔 아무 이유나 갖다 붙였고, 이유를 생각하기도 귀찮으면 「그냥」 이라고 퉁쳤으며, 나중에는 아예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질문이 씹히면 애들은 옆에 있는 라이조까지 성가시게 굴었다. 넌 쟤가 저러는게 괜찮아? 라이조는 질문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사부로를 쟤라고 부른 것이 더 신경쓰였다.

 

 

글쎄, 왜일까?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도 둘 다 기억나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었고 적응되고 난 후엔 의문따위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의자가 왜 의자인가, 물어보면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이젠 사부로의 얼굴이 라이조인게 당연해졌고, 다른 이의 얼굴이 되면 그게 더 놀랄 일이 됐으니.

 

 

하지만 다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넌 쟤가 저러는게 괜찮아? 괜찮고말고. 대강 유야무야 뭉뚱그린듯한 대답이 아니라, 진심으로 라이조에겐 정말 괜찮은 명백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다만 그걸 남에게 말해주긴 살짝 민망하였으므로 웃음으로 때웠을 뿐. 

 

 

한 가지, 라이조가 간과한 게 있었다면, 사부로는 라이조의 변장을 한 것일 뿐 라이조 자신이 아니고, 그러므로 그 이유따위 알 리가 없다는 일이었다. 똑같은 얼굴에 비슷한 행동거지다보니 라이조는 자연스레 사부로라면 그 이유를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의 당연하다시피.)

 

 

"... 라이조" 

 

"응?" 

 

"정말 괜찮은거 맞지?" 

 

 

그래서, 라이조는 사부로가 물어봤을 때 당황했다. 응, 당연하지, 돌아온 대답에 사부로는 안심한 듯이 그래? 한마디 했다.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이후로 사부로는 한 번도 비슷한 질문을 하거나 혹은 떠보는 일이 없었다. 그 생에서 죽을 때까지 쭉.

 

 

 

 

다시 태어났을 때, 당연하게도 사부로와 라이조는 타인이었다. 라이조에게 쌍둥이 형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 인술학원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말도 안 돼!! -혹은, 그렇겠지. 전자는 사부로가 라이조 그 자체가 되고 싶었던 거라고 믿은 사람들, 후자는 사부로가 라이조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할거라 믿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성인이 되어 라이조가 전생의 사람들을 대부분 만났을 때도 사부로는 모두의 앞에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핸드폰의 알림으로 존재를 드러냈을 뿐. 15살, 처음으로 핸드폰을 사고, 기쁜 마음에 자고 일어나니 생겨있던 라인 단체방의 방장 사부로. 그 때의 라이조는 쿠쿠치와도, 타케야와도, 칸에몽과도, 그리고 당연히 사부로와도 만난 적 없었는데 도통 모두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낸건진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다. 칸에몽만이 간간히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대체 우리 연락처를 어떻게 안 거야? 우리가 핸드폰 산 건 어떻게 안 건데? 사부로의 답장은 늘 똑같았다. 후와 라이조 있는 곳에 하치야 사부로 있는 법이지!  아무런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지만 라이조는 그 문구에 묘한 안심감을 얻었고,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사부로는 잡담할 땐 활발하게 말하다가도 누군가 만나자는 한마디만 꺼내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화자가 라이조였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남은 사람들은 이새끼 또 이러네,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금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귀신같이 화제가 바뀌자마자 뜨는 읽음표시가 다른 애들이야 얄밉다지만 라이조는 귀엽다고 느꼈다.

 

 

전생의 사부로의 이미지는 좋게 말해 라이조 껌딱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스토커. 그런 그가 라이조의 앞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는건 당연히 모두의 흥미를 자극했다. 애정이 사라졌다기엔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예전과 같았다. 말이 어떻던간에 그가 보인 진짜 표정이 어떤지 모르는 것마저, 역시 옛날과 같았다. 

 

 

처음에 라이조는 당연히 섭섭했다. 서운하고, 당연히 그리웠으나, 사부로는 1:1 전담 콜센터마냥 답장 반응 속도가 빨랐으니 점점 괜찮아졌다. 얼굴만 보이지 않으면 괜찮은건지 전화도 자주 했으니 더더욱이나. 라이조 흉내를 내던 버릇인지 사부로는 라이조의 프사도 쌔볐다. (그리고 살짝 보정도 했다. 라이조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좋은 날씨ꕤ」 같은 상태메세지를 올려 두면 지 멋대로 「그러게ᰔ」  답장하듯 맞춰 바꾸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들은 변함없었고, 실제로 본 적은 없었어도 사부로를 느끼게 했다. 사부로는 워낙에 원래부터 실체없는 무언가였으므로. 라이조는 죽는 순간까지도 사부로의 맨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만날래? 

 

 

변화가 생긴 것은 라이조가 「온라인 사부로」의 존재에 전생의 사부로만큼 익숙해졌을 무렵이었다. 개인 라인으로 밤중에 온 것을 라이조는 다음 날 정오에야 답장할 수 있었다. 라이조는 여전히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마음껏 고민할 수 있는 과학의 발전이 고맙다. 물론 사부로야 라이조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겠지만.

 

 

-응!

 

 

고민할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고민하는 게 라이조였다. 물론 얼굴이야 보고 싶은게 당연하다만, 사부로가 진짜 얼굴을 밝히고 싶지 않다면 그는 온라인 친구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라이조는 사실은 꽤나 상냥한 사부로가 억지로 얼굴을 비추려는게 아닌지 걱정하느라 4시간을 보냈다. 눈 딱 감고 누른 전송 버튼. 고민에 비해 다소, 아니 많이 짧은 답장이다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물론 없었다. 

 

 

2

 

 

과연 내가 사부로의 맨얼굴을 봐도 되는걸까? 다른 애들에게 비밀로 나만 알아도 괜찮은걸까? 라이조는 만나러 가는 내내 두근두근거렸다. 사부로가 말한 시각은 밤 11시, 장소는 어느 빌라였다. 현관 비밀번호는 라이조의 생일이었다. 라이조는 그게 쑥스러운지, 아니면 반가운 느낌이 드는지 잘 모르겠다. 사부로에게서의 애정은 늘 당연했고, 온라인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띠리릭 문이 열리자 방은 너무너무 어두컴컴했다. 달이 훤하고 밖에도 가로등이 여럿이며 상가 불이 요란한데도 이상하리만치 어두컴컴했다. 복도에 비친 불빛은 겨우 신발장과 그 조금 위만을 밝히고 있었다. 

 

 

한참을 멀거니 서있자 복도 센서등마저 꺼졌다. 그러자 신발장만이 겨우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이다. 라이조는 당황하여 신발을 벗는 것조차 잊고 계속 서 있었다. 들어갈지 말지, 사부로에게 연락을 해야할지 말지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자 "여전하네." 웃음 섞인 목소리가 팔을 잡아 끌었다.

 

 

"핸드폰 키면 안돼." 

 

 

문이 닫히자 방 안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도 이보다 까만 밤은 없던 것 같다. 팔을 잡고 있는 이의 형체마저, 심지어는 스스로의 발 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의 목소리가 사부로를 느끼게 해줬으므로 라이조는 얌전히 따랐다. 속으로는 '이걸 만났다고 쳐도 되는걸까?' 생각하면서. 

 

 

새까만 어둠 속에서 사부로는 어떻게 그렇게 잘 보이는지 용케도 소파로 잘 데려갔다. 굉장하네, 사부로는-. 사부로는 살짝 조용해졌다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더 말해줘. 

 

 

2-1

 

 

 그 후로 둘의 새까만 만남은 계속되었다. 사부로는 종종 라이조가 묵고 가길 청했다. 푹 자고 일어나면 방은 전날의 어둠이 무색하게 아침 햇살로 밝았다. 햇빛 아래 방은 깔끔했고 어찌보면 살풍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일어난 라이조의 곁에 사부로는 없었다. 남은 건 조심히 들어가라는 라인 한 통뿐.딱히 섭섭하지 않은 건 라이조가 둔한 탓인가, 아니면 그 밤 다정하게 대해준 탓인가.

 

 

라이조는 좀 더 뻔뻔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이 사부로에게 만나자고 조를 때 모르는 척 한다거나. 그 빌라는 둘 만의 비밀의 방이 되었다. 옛날 이야기, 지금 이야기, 별 시시콜콜 재미없는 이야기, 혹은 아예 침묵이라도. 손조차 잡지 않고 나란히 누워만 혹은 앉아만 있더라도 그보다 더 안심되는 공간은 없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쉬웠지만.

 

 

사부로는 옛날부터도 얼굴에 손을 잘 못올리게 했지만 이번 생엔 유독 더 그랬다. 라이조로써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어도 사부로는 자기가 거절해놓고 더 안절부절 못해하기도 했다. 시무룩한 사부로의 손을 끌어 라이조의 얼굴 위에 얹어본 건 당연한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 

 

 

사부로는 한참이나 라이조의 얼굴을 매만져댔다. 

 

 

3

 

 

그 동안 사부로는 라이조가 잠에 빠진 이후 귀찮게 굴거나 깨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 날은 눈꺼풀 위로 어른어른하게 불빛이 느껴졌다. 

 

 

"응...?" 

 

 

라이조는 무심코 눈을 뜨려다가, 불빛이 생각보다 밝지 않단걸 느끼고 재빨리 꽉 감았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고민에 빠졌다. 뭐지, 아침인가? 날이 흐려서 그렇게 밝지 않은걸까? 세어봐도 잠든지 얼마 안 된 시각같다만은, 깊게 잠들었다면 또 모를 일이었으므로 그는 누워 한참을 고민했다.

 

 

"아직 밤이야." 

 

 

고민하던 사이로 사부로의 말이 들렸다. "미안해, 깨웠어?" 라이조는 눈을 떠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계속 눈을 감은채로 대꾸했다. 아니야, 괜찮아.

 

 

"미안해."

 

"괜찮다니까." 

 

"라이조의 얼굴이 보고싶어서..."

 

 

그 말엔 잠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라이조는 아하... 끝을 흐렸다. 

 

 

"계속 봐도 돼?" 

 

"응."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침묵이 불편하다. 민망하다고 해야 될런지. 라이조는 머쓱하게 웃었다. "별로 재미 없을텐데..." 사부로는 대답 대신 질문했다. "만져도 될까?" 

 

그래, 허가에 닿는 손길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라이조는 부끄럽기도 했고 살짝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냥 놔뒀다. 

 

할일이 없었으니 감은 눈꺼풀 뒤로 사부로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본모습을 본 일이 없어 상상되는 것은 라이조와 판박인 얼굴, 그 때의 그 모습뿐이었다. 

 

 

" 왜..." 

 

 

사부로는 중얼거린다. 

 

 

 "왜 다시 태어난걸까? "

 

 

응?, 라이조는 당황해서 반문했지만 그는 신경쓰는 기색이 없었다. 사부로는 얼굴에서 손을 뗐다. 사라진 열이 아쉽게 느껴졌다.

 

 

무슨 말이야? 되묻기도 전에 사부로는 말해준다.

 

 

"네 얼굴인 채로 죽고 싶었어."

 

"응?" 

 

"이번 생은 그렇게 할 수 없잖아." 

 

 

사부로는 진심으로 아쉬워보였다. 라이조로써는, 사부로가 왜 그렇게 타인의 얼굴을 고집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부로는..." 

 

"..." 

 

" 사부로의 얼굴이 싫은거야?" 

 

"싫진 않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어색할 뿐이지." 이건 납득이 좀 간다.

 

 

"그렇구나." 

 

"난 전생을 거의 네 얼굴로 살았으니까."

 

"하하."

 

 

시각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 하물며 사람들은 상대를 미적 감각으로도 구분하였다. 그 대상이 되는 일은 얼마나 성가시고, 또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성격에 대한 평가엔 외모도 빠질 수 없는 요소였으니.

 

사부로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이조의 모습으로 거울에 설 때면 정말로 착하고, 완벽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기확신이 부족한 탓일수도 있겠다.

 

돌이켜보면, 사부로라는 인간은 무엇이었을까. 변장하고, 마음가짐마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생각조차 스스로 떠올린 게 맞는지 의문이다. 흉내내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고, 잘 할수 있는데.

 

그러므로 그는 라이조가 고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오래 고민하고, 오래 생각해도, 라이조는 결국에는 결단을 내놓았으니까. 스스로 생각해낸 대답을.

 

가면을 쓰지 않은 사부로는 모르겠다. 남의 껍데기를 쓰지 않은 사부로는 전생의 자신이 어떻게 그리도 똑부러지고 빠른 판단을 내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곰곰히 생각해보자면, 전생의 자신감 넘치고 능청스런 모습들은 모두 '그런 척' 한 것뿐이었던가? 사부로는 남의 모습을 여러겹 쓰지 않으면 너무 작아서 초라하게만 느껴졌으니까. 이따금 가면을 쓰고 있을 때조차 스스로에게 자신없어질만큼이나.

 

그러니 순수하게 라이조가 존경스럽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그 오랜 시간 깊이 생각하면서도, 라이조에겐 어딘가 묘하게 자신감이 있었다. 자존감 높은 척, 자신감 있는 척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떻게 해도 흉내낼 수 없는 진짜의 자기 확신. 

 

 

침묵, 한참동안 그러다가 사부로는 물어봤다. "... 정말 싫었던 적 없어? "

 

"싫다니?" 

 

"내가 네 얼굴로 지냈을 때..." 

 

 

물어봐놓고 사부로는 무서워졌다. 왜 없었겠어, 라던가 사실은 계속 싫었어, 그런 대답이 돌아오면 어떡할까 두렵다. 적어도 지금 라이조의 가면을 쓸 수 있었다면 어느정도 생각을 알 수 있었을텐데. 아니면, 라이조가 눈을 떠서, 그 눈을 읽을 수 있다면야. 

 

하지만 맨얼굴의 사부로는 너무나도 겁쟁이라서, 차마 눈을 뜨라고 할 수 없었다. 라이조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없었는데?"

 

 

"... " 사부로는 침대에서 미끄러졌다. "진짜로? 한번도?"

 

라이조는 또 고민했다. 있었나? 있었을까?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야, 없었을거야." 라이조는 웃으면서(여전히 눈을 감은채로) 꽤 시원하게 내뱉었다. "왜냐면 좋았는걸." 

 

 

"... 좋았어?" 

 

"응." 

 

"왜?" 

 

 

사부로는 단순한 대답을 생각해봤다. 사부로를 좋아해서? 형제가 생긴 것 같았어서? 

 

 

라이조는 빙글빙글 웃었다. "나, 사부로가 없었다면 나를 싫어했을지도 몰라. "

 

 

4

 

 

의외로, 사람이 스스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의외가 아니라 당연한건가. 거울을 볼 때나 수면위로 비치는 모습을 볼 때 이외에, 자기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또 언제 있느냔 얘기다. 우선 그런 이유로, 라이조는 사부로가 자기 얼굴로 변장했어도 그렇게 큰 위화감이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남들의 반응으로써야 아, 우리 둘이 얼굴이 정말 똑같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느 날엔 흥미가 솟았다. 사부로는 변장을 할 때 그 사람 자체를 유심히 관찰했으므로, 바꿔 말하자면 라이조를 누구보다 면밀히 관찰해낸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

 

 

웃을 땐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그러므로 라이조는 자신의 웃는 얼굴을 바라본 일이 없었다. 사부로가 변장해주기 전까지는. 

 

 

아, 난 여지껏 저런식으로 웃었을까? 

 

 

사부로는 대부분 라이조의 거울이었다. 그는 더욱 더 변장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라이조를 유심히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마주보다 보면, 가면만이 아니라 그 뒤, 사부로의 눈에 비친 라이조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저렇게... 

 

 

그 뿐인가, 사부로가 표현하는 라이조는 그의 마음이 섞여 조금 더 귀여웠고, 조금 더 착했다. 사부로의 시선 속에는 라이조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멋있는 사람이 있었다. 

 

 

"사부로가 없었으면, 난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몰랐을거야." 

 

"..." 

 

"그랬으면, 난 계속 내 안 좋은 점만을 곱씹어봤겠지... 봐봐, 고민이 길다던지, 하는 그런거." 

 

"..." 

 

"내가 싫어진 후에는, 내 얼굴에서도 티가 났을거야..."

 

 

라이조는 여전히 눈을 감고 웃었다. "고마워, 사부로 덕분에 난 날 좋아할 수 있었던거야." 그러니까 좋아했어, 사부로가 내 얼굴로 있어주는게.

 

 

"아..." 사부로는 입을 벙긋거렸다.

 

라이조는 아쉬운 듯이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까.

 

 

"아쉽다. 사부로는 늘 날 쳐다봤으니까... 사부로의 눈 속에 담긴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사부로는 그 순간 후와 라이조라는 인간에게 강렬하게 매혹되었다. 마치 금화살에 찔린 것처럼 심장 어딘가가 따끔거리기도 했다. 사부로는 겨우 내뱉었다. 라이조, 너 정말 사랑스럽구나... 

 

전생에서도, 그리고 지금에서도, 사부로는 내심 외면이 주는 편견이나 감정 등이 지난 관계와 추억을 망칠까 두려웠지만, 이 순간 그따위 걱정은 모두 사라졌다.  마치 존재의 허락을 받은 듯했다. 이제껏 스스로에게 가졌던 의문들이 모두 풀린 것처럼,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몸 안을 휘몰아쳤다.  

 

사부로가 있었기 때문에, 사부로가 라이조로 도피했기 때문에, 라이조가 사부로의 시선 속 비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니! 사부로는 이보다 더 한 환희를 느낀 적이 없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면서 방 안이 곧 설렘으로 가득 찼다. 사부로에겐 더 이상 변장의 기술은 없었어도, 그를 생각하는 마음과 두 눈은 건재했기에, 사부로는 그대로 라이조에게 간청했다. 

 

 

"눈을 뜨고 날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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